미술관 가는 길 - 볼탕스키를 만나다.
나는 그림도 미술도 예술도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가 맞는 표현이다.
삶과 죽음이 어떤지도 모르지만 평소에 필자는 삶과 죽음은 늘 이분법이 아니고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 삶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본다. 결코 절망에서가 아니라
삶은 죽음을 향해 순례를 해가는 삶의 긴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긴 여정은 영겁과 찰나의 순간 위에 있다. 삶이 우리곁에 있듯이 죽음도 언제나 현재에 있다.


잘은 모르지만, 삶을 죽음과 예술로 연결지어 사실적으로 친화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작가가 있다고 하여, 처형의 초대로 나는 몇 년 만에 미술관에 가 보기로 했다.
즉, 우리가 쉽게 경험하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진이나 옷이나 양철이나 삶의 가까운 공간현장에서 그 미술이라는 예술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멀리 프랑스에서 부산 시립미술관으로 와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그의 리얼한 작품을 통해 사실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정말 가슴 두근거리며 그를 만나러 갔다.


아뿔사, 삶과 죽음은 나의 생각대로 그의 말대로 찰나의 순간에 있는게 틀림이 없었다. 그는 이 번 부산 시립 미술관 전시디자인을 모두 마치고 2021년 7월 76세를 일기로 그가 마침내 영면했다고 한다.
異域萬里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까지 작품을 남겨두고 홀연히 가버린 지금, 그가 생전에 추구하고 구현하려 했던 궁극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새긴 '출발'은 이승의 삶의 출발이었을까, 아님 이세상 너머에 이르는 새로운 출발일까?
그가 마침내 이른 '도착'은 또다른 새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예술세계로의 도착일까, 이 삶과 저 죽음의 일상적 여정, 그가 말한 '우리의 생'의 피안의 종결일까?
그의 예술에 대한 삶과 죽음의 투영은 현실일까 상징일까 초월일까를 생각하다가,
아, 그 모든 님의 오브제는 결국 '달관'이었구나 하고 느껴본다.

그는 사진예술가, 설치미술가, 비디오아티스트 작가로 근대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현대 예술가 중의 한 분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이렇게그의 유작을 볼 수 있어 감사를 표하며 그의 작품을 설명없이 사진으로 소개한다.

다음 글은 인터뷰 아티스트 안희경님이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와의 인터뷰를 엮은 책에서 옮겨온 것이다.
'' '유대인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 는 고약한 법이 있을 때였다.
하루는 우리 집 고양이가 이웃집에 오줌을 쌌는데,
정말 완벽하게 좋은 이웃이었던 그 집 주인이 우릴 찾아오더라.
그는 '오늘 밤에 당신네 고양이를 죽이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소' 라고 경고했다.

그날 부모님은 고양이를 죽였다. 이 이야기는 항상 뇌리에 남아 있는데, 내 생각에 어떤 권한이
부여된 사람은 기어코 그것을 사용하고야 마는 것 같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그런 면이 있다.

(···)

평범하고 이성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아이를 사랑하고 착하다는 평판을 듣는 이들도 수백만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나는 나치도 각각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침에 한 아이를 살리고, 오후에 또 다른 아이를 죽일 수 있다''

볼탕스키는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작업을 한다.
그리고 죽음은 그 어떤 주제보다 그와 잘 어울리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가 40여 년간 매달려온 작품 활동 속에 거의 늘 등장시킨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 30년 더 살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4년 뒤에 죽을 가능성이 그보다 높죠. 그리고 언제 죽더라도 죽음이란
지극히 보편적인 일입니다. 우리시대는 죽음에 대한 발상을 거부합니다.


'노화'에도 저항하죠.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이는 것이 한결 낫습니다. 과거에는 죽음이 삶의 일부였어요. (...)
네, 저 또한 살아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죽음이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죽음은 남의 일이었습니다. 부모나 나이 많은 친척들 이야기였죠. 그렇지만 일단 60세가 넘으면 내 일이라는 감이 옵니다.
죽음을 향한 길 위에 내가 있다는 깨달음이죠. 당신도 그 허망함을 알게 될 겁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 특별한 이유 없이 가벼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의 죽음도 그저 심심한 사실일 뿐입니다.''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을 '우리의 생'이라고 하죠. 그리고 이 시간동안 미래에 올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믿는 인간이 되는 길이란 신에 대항하여 싸우는 겁니다. 그 우연에 대해 맞서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마지막에 이길 겁니다. 우리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죠. 그래도 인간이라면 운명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세상 어느 예술작품 가운데 치유 아닌 것이 있을까만은, 그 표현의 심도는 작가가 닿은 영혼의 깊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볼탕스키의 작업에는 차가운 빙하를 뚫고 심해라는 본래 흐르던 그 성품에 다다르게 하는 통찰이 있다.
ㅡ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2.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다.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가 /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안 희 경著.아트북스刊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현대 미술 거장 8인과의 대화인터뷰 아티스트 안희경의『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 책은 인터뷰 아티스트 안희경이 2010년부터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현대 미술 거장 8인을 만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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