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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에 붓다를 읽다.

해파랑길 2022. 7. 5. 22:05

장마다 폭염이다 뭐 다해서 지난 한 주는 날씨에 있어서 어수선한 한 주였다. 오락가락 세찬 빗줄기와 후덥지근한 바람과 따가운 햇살은 연신 숨바꼭질을 해대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일기예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다.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후로 자연을 개척하고 극복하고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하였지만 넘지 못할 벽임에는 여전하다.

사람의 일이기에 그렇다.

도대체 대자연의 하는 일이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인데 인간은 그래도 감히 첨단과학이니 기술이니를 동원하여 오늘 날씨가 어떻다 내일 기온이 어떻다 하며 자연을 호시탐탐 엿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왔다. 이에 대자연은 골이 났는지 신이 났는지 갈수록 날씨에 있어서 이상기후를 만들어내고 연일 이상기온을 뿜어대고 있다.

가소로운 인간을 놀리기나 하듯 말이다.

그것은 올해도 전혀 예외가 아니다.

내가 사는 중남부지방은, 올해는 장마철이라 했지만 장마답지 않은 한 주였고, 삼복철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삼복이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무더위가 맹위를 떨친 한 주였었다.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 민음사刊

나 또한 유달리 밤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잠을 설치게 한 이 이상기후는 나로 하여금 면역저하를 일으켜, 이번에는 그만 심한 알레르기를 앓게 하고 말았다.

나는 자연을 경외할 뿐이지 원망할 아무런 건더기가 없으므로 진료를 받고 약에 의존하며 그나마 책을 읽으며 불면의 밤을 견뎌내기로 했다.

정찬주 님의 '나를 찾는 붓다 기행'이란 책을 읽었다.

내친김에, 작가의 글과 인터넷을 참조하여 일기를 썼다.

여기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적은, 내가 아는 붓다의 일생 전반부를 일부 요약하여 본다.

붓다는 원래 히말라야의 산악지방 네팔지역의 Magada國국 Saka釋迦석가라는 민족 출신이다.

우리가 붓다를 가리켜 석가모니라 함은 그 석가족의 수도 카필라 성의 왕족(태자)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란다.

Maya마야부인이 아기(고타마 싯다르타)를 낳고자 Suddhodana숫도다나 王의 허락을 받고 친정으로 가는 도중에 Lumbini룸비니동산에 이르러 그만 산기를 느껴 나뭇가지를 붙들고 옆구리로 아기를 낳으니, 그가 바로 세존이신 붓다였다.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의 보리수ㅡ지식백과인용

이때 공중에 있던 용왕의 형제들이 어린 붓다를 목욕시켜 주자, 붓다는 삼천대천세계를 밝게 비추며 홀로 일곱 걸음을 옮기시며 다음과 같이 유명한 탄생게를 외치셨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천상천하 유아독존
三界皆苦 我當安之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나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왕은 태자에게 Siddharth 싯다르타라 이름 지었다.
태자의 출생년대는 기원전 500~600년대에 걸친 여러 설이 있으나 명확지 않다.

태자는 일찍부터 출가하려 하였으나, 부왕의 만류로 결혼을 권하는 부왕의 뜻을 받들어 싯다르타 태자가 결혼한 것은 16세 때의 일이었다.

태자비는 야쇼다라(Yashodara)였고, 이듬해에는 라훌라(Rahula)라는 아들을 얻었다.

싯다르타가 아들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녀를 얻은 것을 두고 당시에는 일종의 장애와 속박 또는 결박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마침내 직접적인 출가의 한 사유가 되었고, 때가 되었는지라 효심이 깊어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을 태자의 지위와 공명도 버리고 드디어 출가를 결심했는데, 출가란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기도 하였다.

이때 태자의 나이는 29세였다.

출가 후 바로 득도한 것은 아니다. 고행의 연속을 통하여 비로소 어느 날 대각을 얻게 된 것이다.

그때 태자의 나이는 35세였다.

이때부터 태자는 스스로를 붓다(Buddha, 佛陀불타, 깨달은 자)라고 불렀다.

붓다의 고행상(라호르 박물관 소장)ㅡ지식백과인용

그리하여 출가 후 육 년의 고행 끝에 깨달은 사람, 즉 붓다가 되었고, 다시 육 년의 출가의 길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붓다는 제자들을 이끌고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아버지 숫도다나 왕을 뵈러 카필라 성에 돌아갔다.

붓다가 출가 이후 아버지를 다시 만나 처음 한 말로 오늘 불면에 읽은 글을 마무리한다.

''깨어서 귀를 기울이십시오.
선한 삶을 사십시오.
선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삽니다''

불면의 밤을 이기고 견뎌내기 위해서는 선풍기를 틀까 책을 읽을까?

님은 어떤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을 읽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