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으며 어디로 가는가?
해묵은 의문이지만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영원한 숙제가 되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간의 구함과 찾음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유대교와 카톨릭을 포함한 대부분의 크리스챤 유대인 무슬림 등의 생각 바탕은 종국에는 신神을 향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바라는 이땅에서의 행복추구나, 저 곳에서의 영생, 구원 등등의 이 완전한 구함은 곧 사람의 영역을 벗어나서 절대자의 영역으로서 신을 찾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그대들의 일상이야말로 그대들의 사원이자 종교이다. 그러니 그 속에 들어갈 때마다 그대들 전부를 가지고 들어가라. 쟁기와 풀무, 망치, 기타도.''라고 하면서, ''그대들이 신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지 말아라. 차라리 자신을 돌아보라. 그때야 비로소 그분이 그대 아이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볼것이다'' 라고하며 사람의 일상과 자신 스스로에서 구함을 찾으라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쨌든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인간의 그러한 간구, 구함과 찾음은 그게 무엇이든 (신神이 아니든, 신神이든, 어떤 신神이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신神은 정녕 낙원에만 머물며 거기서만 우리의 간구함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래에 그에 관해 내가 읽은 책의 아주 일부를 인용 소개한다. 카톨릭교회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최초의 여성신학자중의 한 사람인 엘리자베스 존슨의 글을 읽어보고, 당신의 구함과 찾음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를, 또 어떻게 구하면 찾을 수 있을지를 한번쯤 묵상해보기를 권해본다.


>>>>>>>>>>>>>>>>>>>>>>>

유대인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의 전형적인 모습은, 상대방이 서로를 찾는, 구함에서의 강렬한 상호작용이다. ''구하는 자는 반드시 나를 만날 것이다''(잠언 8:17)라고 약속하면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여성적 화신인 지혜는 자신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을 찾아 친히 저잣거리에 나선다.
그녀는 시녀를 보내 모든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여 명철의 길을 걸으라고 말한다(잠언9:3~6).
유대교 신앙의 이런 역동성은 기독교 문서로 이어져,구하고 찾는 행위는 복음서 안에도 가득하다. 예수는 확고한 자세로 제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는 대신 하나님을 찾으라고 ㅡ다른 말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라''고ㅡ
가르쳤다(마태복음 6:33).
이 충고에 다음과 같은 약속이 이어진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마태7:7)'
하나님을 구하는 인간의 행위는. 길 잃은 자를 찾는 하나님의 행위와 마주한다


구함과 찾음의 주제는 코란에서도 등장하는데, 그것은 신의 존재와 자기현시를 상징하는 신의 얼굴을 보려는 열망과 연결된다.
''네가 돌아서는 곳마다, 거기. 신의 얼굴이 있다.''(코란 2:115) 독실한 이슬람교도라면 신의 얼굴을 자연세계의 산물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얼굴에서도 발견할 것이다. 특히 매일매일의 기도를 통해 신실한 이슬람교도들은 신의 존재와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신의 얼굴을 찾아 밤낮으로 구하는 자들을 친절히 대하라'' 모든 진실한 무슬림은 무하마드가 그랬듯 ''오직 가장 높은 신의 얼굴을 찾는 것''을 평생의 간구로 삼는다(코란 92:20)
ㅡ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에이 존슨,
박총.안병율譯, 북인더갭


-----------------♡----------------
위 책에서의 내용은 전적으로 기독교적에서 본 神, 즉 하나님이 간구의 대상임은 물론이다.
위에서 얘기한바와 같이, 우리가 간구하고 찾는 것은 특별한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대동소이하게 행복이든 불로영생이든 구원이든 그런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예를들어, 특히 서구 유럽인들이,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 중에서도 카톨릭 기독교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간구를 끊임없이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Quest for the Living God 의 저자 Elizabeth A. Johnson 박사는 책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간구되는 것의 본성인 신神은 인식 불가능하고 불가해하며, 무한하고 형언할 수 없으며, 어떤 다른 표현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성불가침 절대유일신 the only God 에 대한 순종이라는 뜻이다. )
두번째로, 이러한 간구는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채울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된다고 한다. (간구는 더 진해져서 갈구가 되고, 어떨 때는 탐구로 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탐구는 욕망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세번째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역사에 따라 구함도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신은 결코 낙원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일게다. 변화하는 시대여건이나 환경 상황에 따라 구함도 달라지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이책을 읽고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신을 찾는 것은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인간 영혼의 활동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한 존슨박사의 말이 평범하지않게 내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