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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선사와 백거이의 길 2

해파랑길 2021. 12. 29. 20:05

백락천 시선집, 권영한 編譯. 전원刊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이 같은 대답에 실망하여 말했다.
“그거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백낙천이 신통치 않다는 듯이 대꾸하자, 선사는 부드럽고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하였다.
“그래, 알기야 세 살 먹은 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
하지만 팔십 된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아는 것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은 그제서야 비로소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양해의 '도림백낙천문답도' (道林白樂天問答圖)

누구나 선과 악을 구별하고 인의예지를 알고 있지만, 그 선과 악을 분별하여 가려서 행하고 인의예지를 족히 실천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백거이가 살아오고 배워오고 알고 있는 지식은 관념적인 지식에 불과한데 비해, 도림선사가 깨친 선각은 현실적인 경험적 삶의 앎에서 나온 것이다.
단순한 세속의 앎과 깨침에 달관한 삶의 간극이 그만큼 크고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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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인격화하지 않으면 교만(驕慢)과 번뇌(煩惱)만이 더할 뿐, 진리의 길 진실한 삶의 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을 도림선사가 일러준 게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거해스님編譯, 법구경( 제183번째 게송 ; 칠불통계게 )ㅡ도림선사가 전한 법구경 게송

불가에서는 비록 팔만대장경을 외우는 능력이 있다 하여도, 모든 악의 인연을 맺길 좋아하는 반면 모든 선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선사의 가르침을 겸손히 단숨에 받아들인 백낙천의 허심탄회함과 유유자적함도 가히 당唐 일대一代를 풍미한 대문장가다운 인품을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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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낙천은 은퇴 후 만나는 사람마다 도림선사와의 일화와 도림선사가 준 법구경의 활구법문을 일생의 시작詩作으로 승화시켰다. 또 그의 삶과 문학에서 몸소 행하며 불법의 자비와 실천을 세상에 전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고, 또 이러한 선행과 실천은 실제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 같이 동참하게 되었고 많은사람들이 그의 시를 읇고 외울 정도로 민중 속으로 전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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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백거이는 중앙관료들의 기득권 싸움과 이질적인 욕망과 권력다툼의 벼슬길의 풍파를 별 탈 없이 마무리하기로 하고, 세속의 명리에 구차하게 매달리는 세상 사람들을 훈계하며 진즉 자신은 스스럼없이 은퇴의 길을 택했다. 이런 기조는 그의 인생 후반부의 문장과 시들에서도 안빈락도의 유유자적함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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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는 洛陽낙양 땅 여산에 자신의 초당집을 짓고 평소의 생활과 수행을 일치하는 삶을 사는데 진력을 다하였다.
불교에 더욱 귀의하고 참선하며 향산사라는 사찰도 보수하여
그의 불심을 실제 생활에 실천하며 불법의 참수행에 더욱 매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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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백낙천의 명문 시구들은 도림선사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선사가 준 법문과 할에서 깨쳐 얻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 된다.

김천 연화지의 가을, 겨울

*이상의 이야기는 조당집組堂集
(-선종의 역사를 기록한 고서)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필자는 제주 불교신문 이병철기자의 기사, 법보신문 명법스님의 연재기사를 일부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http://naver.me/xy2wQCr3

10. 백거이와 조과도림선사 - 법보신문

나무 둥지에 웅크리고 앉은 선사와 그 앞에 관복을 입고 합장하고 있는 벼슬아치를 그린 이 장면은 한국 사찰벽화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림으로, 남송대 화가 양해(梁楷)가 그린 ‘백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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