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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叱호질을 읽다1 - 범어사 순례

해파랑길 2022. 1. 21. 18:10

올해는 임인壬寅년 호랑이 범의 해다. 해가 바뀐 즈음, 우리는 호랑이더러 소위 백호니 검은 호랑이니 백두산호랑이니 종이호랑이니 등등 말들을 많이 하지만, 진즉 그 호랑이는 우리 인간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하고, 필자는 참 궁금하다.

호랑이의 해를 맞아 필자의 바램은
살아오면서 가슴 아팠고 암울했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제발 잊어버리고 깡그리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의 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라는 말을 믿고, 심기일전하여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70년대 초 고교시절 가봤던 부산 동래 범어사를 순례하고 왔다.

호랑이 해에 호랑이와 관련한 신화와 전설ㆍ 역사를 살펴보면서, 먼저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김현감호'라는 이야기속으로 순례를 떠나보자.

범어사에 가장 근접한 주차장에서 대웅전 가는 옆길


부산 동래 金井山금정산 자락에 통일신라 때 義湘의상대사가 창건한 梵魚寺범어사가 있다. 여기의 성보박물관 수장고에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
一然일연스님이 집필한 국보
三國遺事 삼국유사가 소장되어 있다.

필자 방문시 성보박물관은 신관으로 이전되었고, 오미크론 사태로 입장 불가였다.
삼국유사 권4~5, 국보 제 306-7호,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본 (1394년간행본)사진출처;문화재청


삼국유사 5권 효선편에 '金現感虎 김현감호'라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김현감호란 '김현을 사랑한 호랑이' 또는 '김현이 호랑이를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대강의 줄거리를 필자가 압축하여 소개한다.

<통일신라 원성왕 때 젊은 낭군 김현이라는 사람이 경주도읍에 있는 흥륜寺에 가서 소원을 빌며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마침 같이 탑돌이를 하던 처녀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정을 통하게 되었고 처녀를 배웅차 산기슭에 있는 처녀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처녀의 가족 중 오빠호랑이 떼가 나타나 김현은 놀랐고, 또한 그녀 역시 처녀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호랑이라는 점에 놀랐다.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지금껏 사람들을 해치고 잡아 먹은 죄에 대한 하늘이 내린 罰벌로, 처녀호랑이가 가족의 대표로 하늘로 잡혀가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주차장에서 은행나무 옆길로 관음전, 미륵전, 대웅전으로 직행.

처녀호랑이는 죽음의 벌을 받되 낭군의 칼날에 죽어 은혜의 덕을 갚겠다고 하며, 일부러 도읍으로 내려가서 사람을 해칠테니 그때 낭군께서 나타나 낭군으로 하여금 호랑이를 제압하는 공을 세우고, 국왕으로부터 높은 벼슬을 얻기를 권하였다. 마침내 처녀호랑이는 원래의 호랑이로 돌아가 읍내로 가서 사람을 해치다가 김현이 오자, 낭군이 갖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자결하며 일부러 낭군에게 잡힌 척하며
'내가 죽더라도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결연히 죽고 말았다. 이에 김현은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것은 인륜의 원칙인데 어찌 내가 내 베필을 죽여 벼슬을 구하리요'
하며 죽은 호람이를 감싸안고 슬피울었다.
그리고, 처녀호랑이의 바람대로 왕으로부터 높은 벼슬과 녹봉을 하사받고 호랑이처녀의 소원대로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지어 호랑이처녀의 명복을 빌었다는 이야기다.>

미륵전
우리들의 살아 있는 지금의 삶이 바로 행복이다 ㅡ 대웅전

대강의 줄거리를 읽어본 여러분은 어떤 점이 흥미로웠는지요?

필자는, 작가 일연스님께서 사람과 동물(호랑이)의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어째서 삼국유사에 실었는지 그 깊은 뜻은 알 수 없지만, 필자는
그 뜻을 호랑이의 인간에 대한
報恩보은과 부처의 인간에 대한 慈悲자비로 읽고 싶었다

위;금강계단, 중간;보물 434호범어사 대웅전(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으로 양옆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아래; 대웅전 건물 옆면은 사람 人자모양을 하고 있는 다포 맞매집구조로 1680년 건축됨


다음은 범의 생물 개체에 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흑호와 백호는 호랑이의 아종이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에 분포하는 벵갈호랑이 종이며, 학명도 공히 ‘Panthera tigris tigris’로 표기된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야생에 서식하는 호랑이의 개체수는 4000마리 이하로 점차 감소 추세다.

위; 지장전, 아래; 삼층석탑과 미륵전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국내 17곳의 동물원과 수조관 등에서 사육하는 한국 호랑이는 전부 45마리 정도에 불과하단다.
과거 한반도에 분포했던 시베리아호랑이는 동북아시아 전역에 현재 대략 500마리 정도가 유지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지역적으로 한국호랑이, 아무르호랑이, 만주호랑이, 우수리호랑이 등으로 불리며 중국에서는 동북호랑이, 한국에서는 백두산호랑이라 불리기도 한다''.(*신문기사 참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있는 한국호랑이 16살 '한청' - 2017년 서울대공원에서 이송
서울대공원 시베리아호랑이 '강산' 박제 표본-2019년 15살로 자연사 함.

보제루와 돌계단, 금강계단 - 여길 통과하면 대웅전이 나온다.


다음은 호랑이와 관련한 연암의 '열하일기' 속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필자는 호랑이해 정초正初 벽두에 인간의 아집과 탐욕을 고발한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을 읽었다.
새삼 호랑이는 무섭고 용맹한 동물일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는 대단히 여유있고 인정이 많으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또 소설 '호질'의 풍자와 훈계의 스토리에 느낀점이 많아 오랫만에 완전 공감했다.

천왕문과 불이문(절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문)


해서 대선정국을 맞고 있는 오늘날 작금의 우리 현실 관료 정권, 인간세계 또한 '호질' 속의 세상과 대동소이하다고 느껴졌다.
과연 여러분은 어떠하실지 모르겠으나 '호질'속의 내용을 가만히 오늘날과 대비해 고찰해 보면, 여러분도 십분 그 레알(real)의 진수를 느낄거라 생각되어 여기에 소개하오니, '호질'속으로 함께 숨은 깨우침의 순례를 떠나보자.

서울대공원 시베리아호랑이 '강산' 박제 표본
熱河日記

'호질'은 조선 정조(1780년) 때 연암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 축하 사절단으로 갔다 와서 쓴,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 제4권에 실려있는 한문으로 된 단편 소설이다.

수령 600년이 넘은 범어사 은행나무ㅡ소원성취를 비는 수호목이자 보호수이다.


위선적인 인물 북곽北郭 선생과 미모의 필부匹婦 동리자東里子라는 과부를 등장시켜 당시 선비들(양반계층, 위정자계층 ㅡ오늘날로 치면 공직자를 포함한 금력과 권력지향적 인간 모두를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필자註)의 부패한 도덕관을 호랑이의 입을 빌려 풍자 비판한 작품이다.

범어사 일주문ㅡ선찰대본산, 금정산범어사, 조계문 현판


우리가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다른 사람을 그냥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으며, 권력을 탐하는 선비ㆍ관료들의 위선과 아첨, 인간의 탐욕을 꾸짖는 내용이다.

연암의 손자가 그린 박지원의 초상(1737~1805)

(작가作家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 운동의 선두 주자였다.
특별히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자이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는 것이다.)

관음전 앞 3층석탑 ; 보물 제 250호

소설 '호질'의 줄거리 대강은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의 정鄭 고을에 학식과 덕이 높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북곽北郭선생이 살았다.
그 고을 동쪽에는 절개를 지키며 산다는 과부 동리자가 살았는데 사실 동리자의 다섯 아들 모두 성性이 다른 자식이었다. 하루는 북곽 선생이 남몰래 과부 동리자의 집을 밀회차 찾았다가 동리자의 다섯 아들에게 들켜 줄행랑을 쳤다.

도망을 가다 똥구덩이에 빠졌는데 나오려고 구덩이 밖으로 목을 내밀어 보니 호랑이가 떡 버티고 있었다.
호랑이는 선비(인간의 대부분이 명색은 여기의 선비다-필자註)는 참 구린 것들이라 하며, 북곽더러 요즘의 선비라는 사람들이 사람의 도리를 그저 입으로만 하고 행실은 더러운 사람들이라하며 혹독하고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꾸짖는다.

호랑이의 꾸지람에 북곽 선생은 그제사 뉘우치는양 연신 굽실거리며 아첨을 떨었는데, 그 새 호랑이는 간 곳 없고 어느덧 날이 밝았다. 그제서야 혼비백산했던 북곽 선생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방금 전에 들었던 꾸지람은 안중에도 없이 또다시 덕 있는 선비인 체하며 평소처럼 전혀 반성없이 위선자로 세상사람을 대한다.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


등장인물의 특징을 요약해면ㅡ
범虎 ;
겉과 속이 다르고 타락한 양반을 대표하는 북곽 선생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역할.
여기서 범은 작가의 대변자로서 인간의 간악한 어리석음과 탐욕을 비판하고 있다.

북곽北郭선생 ;
학식과 인격이 높은 선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인물이다. 강자 앞에서 아첨을 일삼는 부정적인 사대부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필자가 보기엔 부패관료는 물론 우리네 범부 인간전부를 말하는 것 같다.)

동리자;
온 나라에 열녀라고 소문이 났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각기 다른 다섯 아들을 둔 이중적이고 부도덕한 비천한 인물이다.

약사전 ㅡ 대웅전 죄측 후미에 있다




세상에 졸렬한 필부匹夫가 많기도 하지만 북곽선생인지 성냥곽인지 모를 그도, 그저 부패하고 타락한 선비요 관료이며 세사의 쾌락과 금력ㆍ출세지향의 기회주의자, 그런 필부였나 보다.


다음은 '호질'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들을 살펴보자.
''그러나 비위(狒胃)는 호랑이를 먹고,
죽우(竹牛)도 또한 호랑이를 먹으며,
박(駮)도 역시 호랑이를 먹고 산다.
또한 오색사자(五色獅子)는 큰 나무가 서 있는 산꼭대기에서 호랑이를 먹고,
자백(玆白)은 날아다니며 호랑이를 먹고,
표견(䶂犬)도 날아다니며 호랑이와 표범을 먹고,
황요(黃要)는 호랑이와 표범의 염통을 꺼내서 먹는다.
활(猾)은 뼈가 없으니 호랑이와 표범이 삼켜도 뱃속에서 그 간을 먹는다.
추이(酋耳)는 호랑이를 만나기만 하면 갈가리 찢어서 먹는다.
호랑이가 맹용(猛㺎)을 만나면 무서워 눈을 내리깔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맹용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더 무서워 하니 호랑이의 위세가 참으로 높은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종래부터 우리 인간이 얼마나 호랑이를 무서워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스님 수행 전각


이번엔 재미없는(?) 여담 하나를 이야기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이 속담의 속 뜻을 영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He who leaves the fame of good works after him does not die.'(동아 출판 프라임사전)
문제는 여기서, 영어로 번역한 속담 명구엔 호랑이라는 영어 단어는 한 글자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두고 겉다르고 속다르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겉과 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글자그대로 속담을 직역하여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literally)A tiger leaves its skin after death; a man leaves his name.(국립국어원영어학습사전)
(속담) Tigers leave only their skins when they die, but through his achievements a man's name lives on.(동아 출판 프라임사전)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과 실제의 세상은 어쨋던 다르다는 것을 필자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대웅전에서 바라본 풍경과 전면 전각들


뭐가 뭔지 모르게 생뚱맞다고요?
그러네요..너무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편안한 글이 되어야하는데..
부디 그러시기를 바라면서..

어쨌거나 간에, 위에서 '호질'의 대강을 읽은 여러분의 느낌은 어떻습니까?
다음 편에 '호질'을 더 구체적으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조서적 ; 1)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개정증보판, 신병주 외. 돌베게刊
2)자료일부; 나무위키 및 지식백과사전을 참조함)

소원을 비는 은행나무 보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