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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虎叱을 읽다2 - 열하일기

해파랑길 2022. 1. 23. 10:44


필자가 쉽게 아는 속담 중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하룻강아지'는 나이가 한 살 된 강아지를 뜻하고 '범'은 호랑이를 말하는데, 아무 경험 없는 사람이 철없이 함부로 덤비는 경우나 지혜롭지 못하여 겁없이 무조건 행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전후 사정과 주변을 잘 살피고 깊이 생각한 후,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매사 잘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용기있고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이다.
범이 사냥할 때는 그냥 무섭게 돌발적으로 맹목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어쩌면 사람보다 더 치밀하고 이성적이고 사려깊게 행동하여 계획한 바 목표를 성취 달성한다고 한다.

만사형통이란 것이 그저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범의 해에 범에게서 용기와 지혜를 배워, 만사형통하기를 바랍니다!

만사형통의 해


(그럼, 다시 한번 '호질'의 대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
산중에 밤이 되자 대호大虎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하고 있었다. 결국 맛 좋은 선비를 잡아 고기를 먹기로 낙착되어 범들이 마을로 내려올 때, 정지읍鄭之邑이라는 마을에 사는 도학자 북곽北郭 선생은 열녀 표창까지 받은 이웃의 동리자東里子라는 청상과부 집에서 그녀와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과부에게는 성이 각각 다른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이들이 엿들으니 북곽 선생과의 정담情談이라, 필시 이는 여우의 둔갑이라 믿고 몽둥이를 휘둘러 뛰어드니, 북곽 선생은 놀라서 황급히 줄행랑을 치며 도망치다 그만 똥구렁에 빠졌다. 겨우 기어나온 후 정신을 차리고 본 즉, 그 자리에 대호大虎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어 머리를 땅에 붙이고 목숨을 비니 대호는 그의 위선을 크게 꾸짖고는 순식간에 가버렸다. 날이 새어 혼비백산하여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있는 북곽 선생을 발견한 농부들이 놀라서 그 연유를 물었으나, 죽어 엎드려 있던 그는 그때서야 범이 가버린 줄을 알고 농부에게는 안 그런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여전히 위선을 떨며 줄행랑을 쳤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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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해를 맞아 필자의 바램은
살아오면서 가슴 아팠고 암울했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제발 잊어버리고 깡그리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의 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라는 말을 믿고, 심기일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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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소설 '호질'에서, 범이 북곽선생을 꾸짖는 내용 중 본문 일부를 소개한다)

무릇 천하에 이치는 하나뿐이다! 범의 본성이 나쁘다면 사람의 성품도 역시 나쁠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착하다면 범의 성품도 역시 착할 것이다. 네가 주절대는 천만 마디 말이 오륜을 벗어나지 않고 남을 훈계하고 권면할 때에는 으레 사강四綱(禮義廉恥)을 주워섬기지만 대처바닥 거리에 돌아다니는 코 떨어진 놈, 발뒤꿈치 없는 놈, 상판에 먹침을 맞은 놈 들은 모두 오륜을 지키지 못한 망나니놈들이 아니냐.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고 있도다. 그러나 우리 범의 세계에는 이런 형벌이란 것이 본디부터 없으니 이로 보면 범의 성품이 사람의 성품보다는 어질지 않으냐.


(ᆢᆢᆢ)
너희놈들은 마소 대접을 어떻게 하느냐. 태워주고 부리던 고생도, 심부름하고 주인을 따르던 정성도 알아줄 까닭 없이 날마다 푸줏간이 비좁도록 채워놓고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을 뿐더러 이것도 부족하여 내 양식인 노루ㆍ사슴에까지 손을 뻗쳐 우리는 산에서는 배를 못 불리고 들에서는 끼니조차 거르게 만들어 놓았다.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처리한다면 너희가 죽어서 나의 밥이 되어야 하겠느냐 , 너희들을 놓아주어야 하겠느냐?


무릇 제 것 아닌 물건을 가져가는 놈을 일러 도적놈이라 하고, 남의 생명을 빼앗고 물건을 해치는 놈을 화적놈이라고 하느니라. 네놈들이 밤낮을 쏘다니며 분주하게 팔뚝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노략질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심한 놈은 돈을 형님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겠다고 제 아내조차 죽이는 놈이 있는 판인데 삼강오륜을 더 야기할 나위가 있겠느냐.


어디 그뿐인가.
메뚜기에서 밥을 가로채고, 누에로부터 옷을 빼앗고, 벌떼를 쫓고 꿀을 도적질하고, 더 악착한 놈은 개미 새끼로 젓갈을 담아 제 할아비 제사를 지내기까지 하니 잔인하고 악착한 버릇이 네놈들보다 더한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너희 인간들이 이치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때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거리지만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 중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는 인仁의 관점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사람이 모두 같이 살기 마련이지 서로 해치고 지낼 터수가 아니렷다.
또 선악으로 따져 본다면 공공연히 벌과 개미집을 털어가는 놈이 천하에 큰 도적놈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제 마음대로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훔쳐가는 놈이야말로 인의仁義를 해치는 대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우리 범이 여태껏 한번도 표범을 잡아먹지 않은 것은 제 동류에게는 차마 손을 대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가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는 숫자도 사람이 잡아먹는 수효만큼 그렇게 많지 않고, 우리가 마소를 잡아먹는 숫자도 사람만큼은 많지 않으며, 우리가 사람을 잡아먹는 숫자도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숫자만큼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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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주시대에는 정의를 위해서 싸웠다는 난리가 열에 일곱 번이요, 원수 갚는다고 일으킨 난리가 열에 셋이었는데, 피가 천리 어간에 흐르고 거꾸러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더라.
그러나 범의 세계에서는 홍수나 가뭄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할 리 없고, 덕이고 원수이고 다 잊어버리는지라 세상에 미운 것이 없고, 하늘의 운명을 알아서 순종하며 살다 보니 무당이나 의원의 농간에 넘어갈 턱이 없고, 타고난 성품에 따라 저 생긴대로 살다보니 세속의 이해관계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 범의 영특하고 갸륵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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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질구나!
누가 너희놈들보다 더 심하게 할 것이냐!
ㅡ 박지원의 열하일기중 '호질', 김혈조譯.학고재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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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상에 위치하며 용맹과 기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호랑이의 특징을 잘 나타낸 글귀가 하나 있다. “홀로 다니지만 외롭게 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이동하지만 숨어 다니지 않고, 야간에 활동하지만 교활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임인년에 바라보는 호랑이는 더욱 그러할 것 같다. 새해는 우리 사회도 언제나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20211229. 중앙일보, 신남식교수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