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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다반사 4 - 커피는 커피다

해파랑길 2022. 1. 31. 18:40


'' 왜 커피인문학인가?
내가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의 목적은 첫째는 커피에 대한 교양과 상식의 전달이고, 둘째는 커피를 이야기할 때 달아오르는 기쁨을 더욱 배가시키기 위한 이야기 소재의 제공이며, 셋째는 감히 독자로 하여금 매사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는 습관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책은 커피를 이야기하지만, 구절구절 우리 인간의 삶이 비춰지도록 노력했다. 커피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거울일 뿐이다. 커피인문학은 커피에 대한 또 하나의 발견이자 행복이다''
(ㅡ 커피인문학, 박영순著. 인물과사상사刊)

카페 '어때'


''사람마다 음식 취향이 다르듯이 커피 취향 도 다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맛있는 커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다. 그 역사가 지닌 고유한 맛과 향이 살아나려면 훌륭한 인문학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길건 짧건 모든 나라의 역사는 고유한 가치를 가질 뿐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우열을 가릴 대상은 아니다. 한국의 커피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인생은 어차피 벌어지고, 이 인생에 커피가 도움을 준다. Life happens, coffee helps.' ''
ㅡ커피 세계사+한국가배사, 이길상 著. 푸른역사 刊

커피가배사//커피인문학 책표지


나는 이 블로그에 커피에 관한 글을 정리해 올리고자 상기 책자들을 꼼꼼히 흥미롭게 읽었고 그래서 많은 것을 얻고 새로운 사실을 알고 배웠다. 저자의 말대로 커피에 대한 신화와 전설과 각각의 역사속에서 하나 이상의 흥미로운 발견들을 하게 되었고, 자료를 정리하며 적잖게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자료를 인용ㆍ 참조케 해준 저자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며,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조금이나마 이 블로그를 통하여 그런 동질의 기쁨을 각자의 취향과 시각으로 느끼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부족하지만 전편에 이어 간추려 이 글을 쓴다.

핸드드립중 '브라질 옐로버번'ㅡ 카페 '어때'

김천 자산동 소재 평화성당


필자가 이글을 정리하고 있을 때 커피를 내려다 준 부인더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사람은 누구지?'' 하고 물으니, ''아, 그거야, 고종이지, 텔레비젼 퀴즈에도 나왔는데...''
라고 하며, 마치 당연히 누구나 알고 있는 질문을 왜 묻느냐는 식으로 심플하게 대답했다.

1896년 4월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중에서 가장 커피를 먼저 마신 사람이 고종인줄 알고 있다. 고종이 커피를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당시 왕에게 제공되는 모든 음식은 왕의 입에 닿기 전에 몇 사람이나 기미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종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1882년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 서양과의 잇단 수교가 이어졌고 서양인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궁궐에서 커피를 디저트로 제공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러나 조선인 중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게 정확하게 언제 였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브라질 옐로우 버번 ㅡ카페 '어때'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1883년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과 함께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다녀온 공로로, 1884년 1월 ''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언덕에 있는'슬리핑 웨이브'라는 별장에 가서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커피를 식후에 마셨다''라고, 초대를 받아 간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을 겪은 것보다 무려 12년이나 앞서 그 이전에 항간에 이미 커피가 후식으로 제공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 가능한 사실은 한국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주인공은 프랑스인 베르뇌Simeon Berneux 주교, 그에게 커피를 전달한 랑드르 신부 또는 그들을 위해 커피를 끓였을 조선인 신자 중 한 명이었고, 그날은 1861년 4월 7일이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커피 원두의 향이 처음 전해지거나 처음으로 마셨을 가능성이 있는 날이 1861년 4월 7일 혹은 그 이전 어느날인 것은 확실하다.
ㅡ커피세계사, 이길상(베르뇌주교 서한집, 한국교회사연구소刊))


1883년 창간된 한국 최초의 근대신문 '한성순보'는 1884년 3월에 ''이탈리아 정부는시험삼아 차와 가배(咖啡/커피)를 시칠리아섬에 심었다''는 내용의 커피에 관한 최초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커피를 지금의 중국식 표기인 '가배'라고 표기하고 있다.

초대 주한 영국사에 부임한 월리엄 칼스는 1884년 5월 부임하면서 ''한양에 부임하면서 숙박시설이 없어 조선 세관의 책임자인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묵었는데, 뜨거운 커피를 주어서 고마웠다''고 조선풍물지에 썼다.


1886년 관료이던 윤치호가 중국상하이에서 쓴 일기를 보면, ''돌아오는 길에 가배관加排館(커피집)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왔다''라는 기록이 있다.
1895년 유길준도 '서유견문'에서 미국에 다녀온 상황을 전하면서 ''서양 사람들은 차와 커피를 우리네 숭늉 마시듯 한다.''고 말했다.

최초의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은 갑신정변때 어의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서 1908년에 쓴 그의 '조선 견문기'라는 책에서,
''1884년경 경복궁 궁중에서 대기하는 동안 시중들은 사양하는데도 내게 잎담배와 샴페인, 사탕, 과자를 후하게 권했다. 또 체면을 유지하기위해 거기에다 홍차와 커피를 추가했다''라고 쓰고 있다.

이상의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시기상으로는 1883년 또는 그 전후로 이미 한국땅에도 커피가 존재했고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천 평화성당 가는 길


1897년 3월 20일자 '독립신문'에는, 독일 상인인 골스찰키가 자신이 운영하는 정동에 문을 연 제과점에서 '자바 커피를 판매한다'는 상업광고가 게재되었다.
1899년 8월 31일자에는 조선인 '윤용주가 홍릉 전차정거장 앞에서 다과점을 개업하고 커피와 차, 코코아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실렸는데, 이것이 기록상으로는 한국 사람이 개설한 최초의 커피하우스(커피 음료 판매점)
라고 할 만하다.

이미 서구에서도 그랬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굴욕적인 경술국치와 일제의 강점이후 항일운동을 거친 이후, 선각자들의 시대적 각성은 이 커피하우스라는 문화적인 공간에서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즉, 커피가 시류를 만들고 계몽의 역사적 시ㆍ공간을 만드는데 일조를 한데 큰 의의가 있다.

김천 서부교회


일제가 남대문 등에서 깃사텐
(喫茶店:きっさてん)을 열고 술도 팔고 춤을 추게하며 커피 '카페'라고 불렀는데 반해, 조선 지식인들은 커피를 팔던 곳을 카페라 칭하지 않고 '다방'이라 불렀다.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다방을 차린 인물이 영화감독 이경손이며 그는 1927년 안국동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시대적 각성과 조선 지식인들 간의 해방구로서 문학간담회도 열고 전시회도 하며 문화교류를 시도한 곳이 바로 카카듀 다방이었다.
이경손은 지식인들에게 ''카카듀는, 프랑스혁명 때 계몽주의 사상가와 시민들이 당국의 감시를 피해 몰래 만난 비밀 아지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전하며, 나중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의 임시 정부에 가담하여 이국땅에서도 우리 국민을 결속하는 활동을 펼쳤다.

또다른 인물 천재시인 李想이상은 1933년 종로 청진동에 '제비'라는 다방을 열고, 박태원, 김기림 등 당시 문인들의 모임장소와 지식인과 일반인의 교류장소로 활용하며 끊임없이 창작과 계몽 의 혼을 불사르고 의식을 고양하며, 동시대의 암울함과 자유의지를 시적 유희로 분출하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김천 부곡동 원계서원

1935년 잡지 개벽 제3호 '다방잡화'라는 글에서는 1930년대 중반 서울의 대표적 다방들을 소개하며 ''작은 다방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小小茶店 不知其數''라고 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다방은 다양하게 유행했고, 한글로 '커피'라는 단어 사용이 보편화된 다방은 유행을 넘어 문명의 상징으로 해석되어 마침내 커피가 다방을 벗어나 중ㆍ상류층 가정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유행하는 커피 상식을 넓히기 위해 실린 각 신문사의 기사 제목들을 살펴보면, <가정에서 커피차를 만드시려면>, <맛 나는 커피를 잡수시려면 콩사는 때 주의하시오>, <커피 맛있게 끓이는 비결>, <진한 것은 해롭다>, <주부의 알아 둘 커피차 만드는 법>, <가배차 이야기>, <커피차, 홍차 맛있게 끓이는 법>, <'커피' 한 잔쯤은 해가 안된다> 등 아주 다양한 커피 교양 기사들을 많이 실었음을 볼 수가 있다.


커피의 대중화 가정화를 불러온 주요 계기가 된 것은 미국의 커피 브랜드 '맥스웰'인데, 1930년에 전단지를 만들어 광화문 과 종로에 뿌려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1915년 미국의 맥스웰하우스 본사는 광고를 통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군Good to the last drop''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한다. 이 말은 지금도 맥스웰하우스 커피의 로고에 들어가 있다.)

한편 조선인삼원은커피를 섞은 인삼커피를 선보였다.


인스턴트 커피는 흔히 6ㆍ25전쟁 때 미군을 통해 유입되었다고들 한다. 미군은 'C레이션'이라고 하는 개인별 전투식량을 지급 받았는데 그 안에 인스턴트커피가 있었고, 이것이 불법적으로 시중에 흘러 나오면서 그 중 검은 빛깔의 커피액이 회충약으로도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커피대중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원래 인스턴트 커피의 원조는 일본계 미국인 사토리 카토가 처음 개발 착안한 발명품이었으나, 상업적으로 성공시킨것은 1910년 조지 콘스탄트 루이 와싱턴이라는 벨기에계 미국인이었다.
그 후 스위스의 네슬레Nestle가 당시 과잉 생산된 커피의 용량을 줄이는 한편 이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커피를 액체로 추출한 뒤 물을 날려보내 가루로 만드는 방식으로 네스카페
Nescafe라는 명칭의 분말형 인스턴트커피를 개발하여 대량 생산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미군들에게 보급되어 소위 대박이 되어 전후 세계 커피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7년 미국의 로버트 가드 중장에게 태극 무공훈장을 수여하면서 준 선물이 커피잔 세트라고 한다. 당시 권력 2인자이던 이기붕 부통령이 유학에서 돌아와 다방을 열었고, 그의 부인 박 마리아여사가 다방일을 적극적으로 거들었는데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녀를 한국 최초의 '다방레지reji'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하에서 다방여주인 모두를 폄하하는 관점에서 본 것이라 적절치 않은 표현이며 잘못된 시각이라고 할것이다.
당시의 다방은 대부분 지식인이나 예술문화인들이 주류로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된 카페 문화를 다방에 접목하고자 다각도로 애쓴 깨어있는 선각자들이었고, 그 밑바탕에는 국민을 상대로 계몽의식을 싹튀우려는 열망의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천 원계서원 숭덕사


다방 문화가 그런 지식인에서 시작하여 대중으로 바통을 건네주는 당시의 일등공신 역이 대학생들이었고, 1960년대 들어 민중봉기의 불을 지핀 아지트가 다방이었는데 대표적으로 그 중에 특히 유명한 곳이 서울 동숭동에 있었던 '학림다방'이라고 한다.

https://youtu.be/G3nZ7PR2IHU

커피 한 잔; 펄시스터즈, 1968


김천 김호중 소리길


1970년 6월 동서식품은 처음으로 '맥스웰하우스'라는 상표로 국내생산 커피 제1호인 인스턴트 커피 맥스웰하우스 레귤러 그라운더 커피를 생산 하였다. 1976년 12월 동서식품은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커피ㆍ설탕ㆍ프리마를 조합하여 1회분씩 스틱형봉지에 포장한 커피를 간편하게 물에 타 마시는 방식의 한국製 '커피믹스 coffee mix' 를 개발해 내놓았다.
맥심Maxim이라는 제품명인데, 과히 혁명적 제품이 되었다

1977년 롯데 산업이 일본 샤프社에서 커피 자판기를 국내에 들여와 전국의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하는것을 시발점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참여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자판기 전성시대가 유행하게 되었다.

인스턴트커피, 봉지커피, 자판기커피 등 커피의 대중화를 거쳐 이로부터, 종래의 다방은 급속히 쇠퇴하게 되고 극소수만 전문 음악다방 등으로 다각적 변신을 시도한 계기가 되었고, 커피 시장도 원두커피의 등장과 함께 90년대 이후 커피 체인점이 붐을 이루는 새로운 커피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1998년 6월 서울 강남 지하상가 에 '할리스커피Hollys Coffee ' 매장이 오픈되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에스프레소 전문점 이며, 또한 국내 제1호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 브랜드가 되었다.
1999년 7월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정문 앞에 한국 1호점을 내면서 원두커피 붐과 새로운 커피유행
(예를 들면 거리에서 커피를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시는 것 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 커피 역사에 있어서 엔제리너스,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탐앤탐스 등 국내 자본에 의한 커피 체인점들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전후하여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2000년대는 '커피 전문점의 춘추전국시대'로 기록되었고, 마니아층에 국한되었던 원두커피 음용 문화가 일반대중들이 즐기는 문화로 보편화 되어 원두커피가 음용자의 아이콘이 되게 이르렀다.

그러나 필자 생각으로는, 아직도 우리 한국에서는 커피라고 하면 커피는 그냥 커피일 뿐이다. 말하자면, 커피가 꼭 원두커피와 인스턴트커피 중 그 어느 하나만을 특정하여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가 커피공화국 강릉에 잠시 머물 때 2009년 제1회 커피 축제 때부터 거의 매년 현장에 참석하여 각종의 커피를 맛보거나 시음해 봤었고, 연곡면에 있는 '보헤미안' 본점 매장에 일부러 찾아가 국내 1호 바리스타 커피명인 박이추님을 만나 그의 커피를 직접 마셔 보았으며, 구정면의 '테라로사' 커피공장과 구정면에 '이놈애커피', 견소동의 '산토리니' 등 그 외 커피거리 안목항에 있는 유수의 커피전문점을 방문하거나 구경한 경험은 아직도 잊지못하는 감동과 추억이 되고 있다.

강릉 보헤미안본점, 테라로사 구정, 이놈에커피, 산토리니


https://youtu.be/U1-wQt-4Wrc

by 김성호, 1994


김천 연화지


더 많은 커피 애호가와 마니아층 커피소비자가 증가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커피의 향미와 차별화된 커피 맛을 추구하게 되어, 스타벅스도 2014년부터 특정지역에서 극소량만 재배되는 고급커피를 들여와 판매하는 리저브reserve매장을 전국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1971년 미국 시에틀에서 스타벅스가 창립된 이래 1987년 슐츠가 스타벅스를 인수하면서 세계 커피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제 3의 물결로 불리는 '스페샬티 커피 specialty coffee'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미국의 블루보틀(2002년), 스텀프타운(1999년), 인텔리젠시아(1995년)등의 전문점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상으로 우리나라에 커피 역사가 걸어온 길을 시대 순으로 사건 별로 주요한 것만 정리해보았다.

나는 아직 커피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리고 커피 애호가 수준도 더더욱 아니기 때문인지, 리저브 매장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는 법도 모르고 가서 먹어본 경험도 없으면서, 기어이 이 블로그에 커피에 관한 좀 아는 척 글을 쓴다는게 조금 겸연쩍기도 하다.

https://youtu.be/M7FtwJXfnMg

커피 한잔 할래요 ; 폴킴, 2014


그러나 어쨌던, 내가 마시고 먹는 이 커피는 어제 오늘에 걸쳐 수많은 사연과 스토리를 갖고 역사속에 온전히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귀한 양식이기에, 나는 담대히 글을 쓰며 외치고 싶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마신다, 먹는다, 또 한잔의 커피를!


<현재 동해에서 구워 먹고, 조려 먹는 양미리의 진짜 이름은 까나리다. 서해에서 까나리 액젓의 원료로 쓰이는 그 까나리 맞다. 어류도감에 나오는 양미리라는 물고기는 또 다른 종인데, 요즘은 큰 양미리
(사실은 까나리)에 밀려 아예 존재감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서해안에 가서 양미리 달라고 하고, 동해안에 가서 까나리 달라고 해 봐야 어른들에게 타박만 받을 뿐, 소득이 없을 게다. 그러니 그냥 부르던 대로 부르자.
사실 이름이 양미리면 어떻고 까나리면 어떤가.
구워서 맛있으면 그만이지.>
_20220130, 중앙일보 기사


인류의 발전을 묵묵히 도와왔던 커피의 공로에 대하여, 유대인 역사학자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Jacob은 '커피의 역사'에서, ''한 잔의 커피는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찬양했다.
커피는 기적이고, 이 시대의 생필품이자 성수聖水가 되었다.

이처럼, 양미리든 까나리든, 기적이든 성수든,
내게 커피란 그냥 커피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커피가 내게 맛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그냥 커피가 좋다

김천 연화지


(*참고 및 인용자료; 커피인문학,박영순,인물과사상사刊//
커피이야기, 김성윤, 살림刊//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이길상,푸른역사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