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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산책 4 - 영원한 것은 없다

해파랑길 2022. 2. 10. 21:15

일전에 군위에 있는 사유원을 다녀왔다.
우리가 어디로 가서 여행을 하거나 순례를 하며 길을 걷는 목적이나 이유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 이유나 목적으로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것, 그 의미를 발견하고 기분이 전환되고 자아가 성찰되는 것이 행복이란 것, 그와 같은 모든 일련의 활동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변화하는 삶에 능동적으로 수렴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정되어 있지않고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아니한 것이 인생이니, 고정되어 있으면서 고정되어 있지않는 변화를 계속하고 있는 자연속으로, 특히 이번에 사유원으로 순례를 가 내 인생 후반부를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어서 여행을 넘어 큰 울림을 받았고 큰 수확이 되었다.


얼마전 필자가 십여 년 넘게 봉직한 적이 있는 곳에, 강원도 중에서도 하늘 아래 첫 동네의 중의 한 곳이라 할 만한 청정 오지 면옥치 계곡을 방문했다. 오색온천과 설악산주전골 여행차 간 김에 일부러 그곳에 들렀었는데, 변한게 없는 것은 역시 依舊의구한 산천 뿐인 것 같았다.


고려 말 조선 초, 야은 吉再길재 선생은 조선이 개국되고 나서 옛 고려의 수도 개경의 도읍을 둘러 보며 슬픈 詩 한수를 읊었다.

''오백년 도읍지를 匹馬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依舊의구 한데 人傑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영원토록 번성할 것 같았던 500년 왕조가 한순간에 허무하게 몰락하고 없어져버린 안타까움과 허무한 심정을 꿈처럼 노래했다.


權不十年권불십년,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諸行無常제행무상이란 말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변모하고 생성소멸하여 항상 변천하며, 결국은 '영원 불변은 없다'는 것 이다.


오늘은 연암선생이 '冷齎集
냉재집' 서문으로 쓴 산문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내용'의 다음 글을 읽어보며 고전을 순례한다.


< 돌 다듬는 석수장이가 글자를 새기는 剞劂氏기궐씨
(*나무판에 글자를 전문적으로 새기는 사람-필자註)에게 말했다.

''무릇 천하의 물건 중에서 돌보다 더 단단한 것은 없겠지만 내가 그 단단한 것을 쪼개어 깍고 다듬었네. 꼭대기에는 용틀임을 조각하고 밑바닥에는 거북으로 괴서 무덤 앞에 세우면 永永世世
영영세세토록 뽑히지 않게 되니 이것은 바로 내 공로일세''


기궐씨가 대꾸했다.
''오래도록 닳아 없어지지 않게 하자면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더 오래갈 것이 없네. 고관대작에게 높은 행적이 있어서 군자들이 묘비명을 썼다고 하더라도 나는 새기는 공이 없다면 장차 어떻게 비석을 만들꼬?''


(서로 누구 말이 맞는지) 드디어 무덤앞에 나아가 판결을 청했으나 무덤은 괴괴하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세 번을 불러도 세 번 모두 대꾸가 없었다.
그때 무덤 옆에 서 있던 돌사람
(*石翁 - 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필자註)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들이 천하에서 제일 단단한 것을 돌이라 했겠다. 또 제일 오래 보존하는 방법은 새기는 것보다 더 오랠 것이 없다 했으렸다. 돌이 과연 단단하다면 어떻게 쪼개서 비석으로 만든다는 말인가? 만약에 닳아 없앨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새길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쪼개기도 하고 새길 수 있을진댄 이 다음에 구들장이가 비석을 가져다가 부엌의 솥을 괴는 돌로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필자 개인적으로 연암선생의 글들은 언제나 가슴이 찡해지는 듯한 오래도록 여운을 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촌철살인寸鐵 殺人의 경구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그 또한 영원치를 않고, 사람이 죽어 이름을 남기지만 그 명성은 곧 역사에 묻히고 말 뿐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 서러워말찌니
이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